지금 까지 전해내려오는 고정산의 이야기"정란, 정란은 어린시절 부모를 잃어 부모를 봉양 할 수 없기에 부모를 그리워하는 자신의마음을 담아 나무에 부모의 얼굴을 조각하여 마치 부모를 살아계실 때 모시는 것처럼 섬기며 모셨다.
정란의 아내는 긴 시간이 지나자 정란이 조각한부모의 조각상을 존중하지 않게 되었고, 우스갯소리로 바늘로 조각상의 손가락을 찔러도 피도나오지 않는 조각상을 모시고 있다고 생각하여 조각상의 손가락을 찔러 보았는데, 놀랍게도 조각상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부모의 조각상은 정란이 온 것을 보고는 눈물 까지 흘리었다. 정란은 이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어 아내를 쉬게 하였다."
이 이야기는 비록 사실 논리에는 부합되지 않지만 <<효경>>에는 부합되는 말 이다.
낭만주의의 창작 이고 효자의 깊은 정을 보여준다. 비록 실제로 부모와 마주보며 정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조각상을 이용하여 감정을나타냈고, 그것을 조각상의 피로 나타내었을 뿐만 아니라 조각상의눈물로도 표현하였다.
정란의 이러한 부모님의 조각상에 대한 존중은 살아계시는 것처럼 존중하였고 그의효심을 완전히 증명하였으며 지금 시대의 우리들에게 또한 부모의 대한 효를 중요시 한다.
중화민족의 전통미덕을 계승하여 우리 또한 배워야할 부분이며,"효"를 아는 부모의 자식은 정란의 이야기에서처럼 자식 또한 효를 배운다.
저장에서는 지금까지 정란의 문화 유산을 항주시 중심에서 약 10키로 정도 떨어진 정교전에 두고 이 곳을 효자 정란의 고향이라고 부른다.
후손들은 이 곳에 정란의 이름을 담은 “란(난)교”를 만들었으며 소도시 부근에 정란2교를 만들었다. (항주시):정란교(다리의 이름) 정란의 고향과 정란다리는 주민센터에서 약 12키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고, 이 곳은 한나라 시대의 효자 정란의 고향이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