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하는 항주에서 가장 오래된 운하로 춘추시대에만들어졌다. 오가 월을 멸한 후 해정부터 고정산 남부까지 일자로수도를 개통하였는데 조운(漕运:배로 나르다)을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하여 조운하라고도 불리운다. 후에 월왕 구천이 오를 멸한 후 이 일대를 월국에 복속시켜 속칭 ”오고수도”라고도 불리운다. 시황37년 (기원전210), 진시황이 10만 죄수들을 시켜 다시금 수로를 뚫었는데 절강성을 통과한다 하여 능수도라 하였응며속칭 진하라고 불리었다. 진시황이 동쪽으로 순찰을 나갈 때 단양부터 임평을통과하여 전당까지 도달하였는데 그 길이 바로 이 수도이다. 수양제가대운하를 만든 후 상당하는 강남운하의 남부를 맡았으니 항성으로 들어오는 대운하의 유일한 수로로서 유포를 통해 절강성까지 들어왔다. 당나라 때 협당하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정관8년 해정부터 장안댐까지 이어저 상하가 되었다. 송나라 때는 상당하라 불리었으며 절강서쪽의 운하로 동으로 임평, 장안에 이르러 대운하로 빠진다. 당시 해운의 주요 통로로 사용되었다. 남송시대에는측안일대를 “측안하”라 하였고 <함순임안지>에서는 “측안하, 재측안남, 자운하입, 통고당, 황당제하(측안하는 측안 남쪽에 위치하여 강으로 흘러 당을 가로질렀다)”라 하였다. 당시 측안에는북쪽의 사자가 머무르는 관역 반형관(班荆馆)을 두었다. 원나라 말기에 당서부터 강장교까지 신운하를 만들어 상당하는 더 이상 주 항로가 아니게 되었고 그 후 조금씩 쇠락해갔다. 상당하는 현재 항주성구부터 고정산남부로 이어져 성교진, 임평진등을 지나 세가댐을 통해 해녕, 전당강으로 이어진다. 강 길이는 총 48km이다.